에필로그(Epilogue)



기계의 시대(the machine age)에서 진화와 발전의 과정 중 파생되어진 디자인의 급진주의적 실험은, 모더니즘이 마감된 이후에도 바우하우스나 멤피스등의 기초정신으로 이어졌으며 기존의 유럽의 전통성과 고대의 형식주의를 뛰어넘는 무국적주의, 국제적 스타일의 창시(International Style)와 새로운 미학적 시도에서 그치지 않고, 사물의 본질적인 성질에 대한 의미론의 성찰과 재해석, 절충주의적 방법론(Eclecticism) 등을 통해 사물이 가진 전형성의 비약과 전복의 구현을 가능케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180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 등장한 아방가르드(Avant-garde)는 그 이념의 초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19세기 초반에 등장한 Meret Oppenheim의 동물의 털로 싸여있는 찻잔과 같은 오브제들이나, 스페인의 Salvador Dali, Chema Madoz 같은 이들의 작품들속에 기표(signifier)되고있는, 본래 사물에게 이식되었던 단순한 물리적 가치를 뛰어넘는 초현실적 의미부여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시대상 속에 어떻게 디자인과 예술의 실험적 가치가 인간의 의식적 감각 확장에 기여하였는지를 가늠하게끔 한다. 급속한 기술의 발전과 축적된 경험을 통한 효율적인 방법론으로 사고의 구현성이라는 현실적 제약을 뛰어넘은 근대의 디자인 영역의 성장은 결국 태생적으로 부여된 장식과, 기능으로써의 의미를 넘어서 인간성(humanity)의 고유한 영역이었던 예술성(artistry), 즐거움(pleasure), 감각(sense), 욕망(desire)과 같은 감성의 영역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그 원리적 기초의 원류와 방법적 연구는 이전의 존재하였던 실험적인 시도에 기원하였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근래의 첨단의 혁신적 과학기술과 철학적 타이폴로지(typology)의 발전은, 디자인으로 하여금 인간의 의식과 일상의 사물들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더 이상 구시대적 설정에 얽매이지 않게 하였으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초감각적(extra-sensual)이며 즉각적인(instant)시대에서 실제로 수많은 단계와 영역에서 우리의 삶과 의식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단순한 기계의 우월성으로 인간의 육체적 기능을 보완하거나, 영감적인 심미성을 조형화하는 것을 넘어, 이제 ‘디자인’된 모든 유형의 재화과 무형의 용역들을 통해 인간에 감성의 촉매제로써, 또한 개인과 사회의 관계설정의 도움자로써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된 시대가 찾아온것이다.

그렇다면,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지금의 시대, 즉 디자인이 개인의 모든 영역에 관여하고 있으며, 지구의 정반대편의 문화와 트렌드를 실시간으로 체험하며, 국지적 사회성의 의미가 점차 희석되어 국제적 문화가 확장되고, 개별적 주관의 영역과 공공 영역의 구분마저 변화해가며, 동시에 개인의 다원적 가치와 전통, 현대, 미래가 공존하는, 극변 중인 오늘의 시공간을 살아가는 현대의 디자이너들의 의식이 꿈꾸어야 할, 또는 추구해야 할 새로운 가치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방법은 어떻게 진보되야 할까?
(특히 현재의 한국, 주체적 산업화와 자주적 근대화의 시기를 맞이하지 못함으로 잃어버린 전통성와 현대적 문화의 정체성들 사이에 연결고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속에, 지금의 시대를 살고 있는 디자이너들은 다음의 세대를 위해 무엇을 전해주어야하고, 어떻게 기여할것인가라는 디자인적 도의와 사명에 대해 공통적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대적인 철학적 원인관계와 현세적 몽상을 목적하기 위한 일련의 ‘실험적’ 작업의 구성들로 연결되어 있는 이 프로젝트들은, 국제적 동시대성(contemporary)이 지닌 디자인적 심미성의 원리와 한국 사회속의 기초적 표본 사이의 틈을 확인하는 것을 시작으로, 동서양에서 문화를 경험한 개인적인 영감을 토대로 다양한 발상의 전환과 과정상의 특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원초적이며 솔직한 기술, 산업성의 상징적(symbolic) 이미지와 소재의 실험적 재해석. 단순히 괴상함을 생산하기 위한 이종교배가 아닌 동시대성을 반영하고 있는 전통과 현재, 전형(archetype)과 변칙(irregularity)의 가치공존 속에 새로움과 신선한 네러티브(narrative)의 발산과 확장을 표현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때로는 미묘하게(subtle) 선택되어 구성되어진 오브제들 스스로 그들의 존재적 가치를 설명하기도 하며, 때로는 디자인과 예술, 기술과 감성을 넘나드는 선택적 실험의 결과로 얻어진 우연적 효과와 소재의 재발견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새로운 의식의 전환과 사물에 대한 단상의 즐거움(thought provoking)을 선사 할 것이다.
또한, 다양한 방법적 전개에 의해 귀결된 조형성은 국지적인 전통의 형식을 취하거나, 형태적 일관성을 가지지 않은 대신, 내면에 원리적 특수성을 내포하여 표현되고 있는데, 이것은 ‘모던함’, ‘심플함’ 같은 한국 디자인씬에서 사용되는 불명확한 의미론(semantics)의 피상적인 담론과, 제한적인 효율성만을 중시하여 기능주의와 시장주의적 접근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고로 누적되어온 고루함을 탈피해, 우리 일상의 사물들, 다시말해 선행되어진 경험과 일차적 감각에 의해 물리적 존재의 것들에 씌여있는 의식의 굴레를, 갖혀있는 상자 속에서 벗어나 보고자하는 은유적 제안이기도 하다. (단순함이라는 개념은 대상의 상태보다 우리의 직관과 인지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라는 Donald Norman의 힌트는 그래서 관념의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나름의 함축적인 요지를 시사하고 있다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현대 한국 디자인관의 무의식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원리적 이해와 결론의 관계에 상관없이 표현적 단순함, 또는 조형적 단순함이 현대적이며 아름다운 것이고, 복잡한 것 혹은 장식적인 것은 그렇지 못하다는 잘못된 선입견을 다시금 생각해볼 기회도 될 수 있기를 개인적으로 기대하여 본다. 이것은 어쩌면 전통적 공예산업의 자주적 근대화를 놓친 한국사회의 단순한 문화적 사대주의 경향일 수도 있고, 척박한 디자인 환경속에 생존적 자본주의의 결과로 도출된 자연스러운 경향일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 되었든 불완전한 전제로는 어떠한 명제도 완성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한다. 단순한 것이 아름답지 않다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호도된 선입견은 발전적이며 실험적인 시도가 저해되고, 위축시키며 곧 우리 디자인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사실 인간이 느끼는 아름다움의 원천은 자연의 경이로운 복잡함에서 출발했다고 보는 것이 견해가 절대적이다. 미니멀(minimal)한 것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해와 철학의 역사가 불과 150년이 남짓한것에 반해, 자연의 심오하며, 복잡함의 아름다움에 인류가 매료된것은 수천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렇게 르네상스도 탄생하였고, 산업화를 맞은 인류 문명의 아르누보(Art Nouveau)는 관능적이며, 자연의 유기적 아름다움에서 영감을 받은 복잡함의 미학으로 산업과 공예, 예술의 시대를 이끌었다. Jean Baudrillard가 ‘The system of Objects’에서 언급한 데로 인류 인테리어의 역사는 자연을 내부로 복제해오는 것에서 시작되었으며, 인간에게 자연의 복잡함은 아름다움의 대상이였고, 그 복잡함을 복제하는 것은 곧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행위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복잡함의 미와 그 안에 재가공된 장식의 아름다움을 추상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성질은, 형이상학적인 오늘날의 현대적 구조미와 그 심미성에 대해서도 분명히 공명(resonance)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인간의 감각이 미쳐있는 ‘디자인’ 되어진 대부분의 재화와 용역은, 디자이너에 의해 태생적인 기표(signifier)를 가지며, 사용자, 경험자의 의식의 굴레 속에서 기의(signified)된다. 이러한 의식적 굴레는 때로는 우리들에게 익숙함과 친숙함을 약속함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움과 새로움을 경계시키는 기능을 동시에 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마치 마치 알의 껍질처럼 안과 바깥 세계의 관계를 유지하고 구분하는 역할을 가진다. 그러나 새가 알을 깨고 나와야만 비로소 진정한 세계를 만날 수 있듯, 디자이너를 비롯한 모든 기표의 생산자들이 한정된 인간의 감각으로 굴레지어진 의식의 경계를 허물지 못한다면, 우리는 더 넓은 의미의 세상과 영영 마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물질과 의식, 다문화의 크로스오버 조합, 틀에 박힌 형식주의와 근대적 거대 담론을 탈피하는 실험적 디자인의 모토는 그것이 도래한 기백년전의 시대만큼이나, 현대 우리의 시대에도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으며, 흥미로운 미래지향적 디자인의 가능성의 문을 열어줄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끝으로 또한 나에 의해 생산된 기표들 역시 사람들로 하여금, 사고의 즐거움과 새로움을 경험 할 수 있도록 되어보기를 희망해본다.

metafaux studio / 메타포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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